나는 전주에서 실비아를 찾아 헤맸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녀를 찾아,,,

by 파란
[아이의 얼굴609] 졸업식 풍경8
 
[아이의 얼굴609] 졸업식 풍경8

졸업식 전날 아이와 함께 심야꽃집투어를 했다. (아이는 졸업 한달전 내게 구체적으로 꽃다발을 주문한 바 있다) 우리의 가시권 내에 있는 꽃집들에 주파수를 맞추고 레이더를 돌렸다. 산본, 금정, 범계, 평촌을 돌던 레이더가 돌연 상록수역에 가 멈춘다. 주주플라워는 상록수역 한국통신사거리에 있다. 꽃을 고른 후(생화 한 다발, 드라이플라워 한 다발) 꽃가게 주인과 가격 흥정을 벌였다. 아이는 창피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션을 완수했고 기쁜 나머지 콧노래를 부르며 졸업식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당고개행 전동차에 올랐다. 그렇게 졸업식 전야를 보냈다.

아이가 밤하늘 아래 노래를 부른다.

by 파란 | 2018/02/13 13:27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610] 졸업식 풍경9
 
[아이의 얼굴610] 졸업식 풍경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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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한 생각들이 공원에 앉아 있다. 가만히 울고 있다. 투명한 새들이 나무에 앉아 있다. 숲의 기억을 쥐고도 펼 수가 없다. 언제인지도 모른 채 돌아서 가버린 것들이 있다. 그런 일들이 날마다 쌓여간다. 어떤 꽃이 피든 그것은 그것대로의 생. 내게 그런 것 묻지 말길. 앞사귀를 통과한 11시의 햇살이 그림자를 빗나간다. 그림자가 비로소 놓여나 걷기 시작한다. 물가를 걷듯 천천히 움직인다. 나무 의자들이 떠다닌다. 잠시 앉았던 사람들이 치우고 가지 않은 불안의 힘. 아직도 남은 휘파람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 해. 부드러움이 만드는 이런 완강함의 질서. 아무도 앉지 않아도 시소는 항상 한쪽 바닥에 닿아 있지. 투명해지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세계. 새들이 그렇지. 새들의 실핏줄 속으로 차오르는 깜깜한 어둠에 대하여 공원은 모른 체하지. 깜박이는 눈처럼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 후 그 기억만으로 살아야 하지, 공원은 그렇지."
- 이승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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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한 생각들이 공원에 앉아 있다. 가만히 울고 있다. 투명한 새들이 나무에 앉아 있다. 숲의 기억을 쥐고도 펼 수가 없다. 언제인지도 모른 채 돌아서 가버린 것들이 있다. 그런 일들이 날마다 쌓여간다. 어떤 꽃이 피든 그것은 그것대로의 생. 내게 그런 것 묻지 말길."(이승희 <공원> 인용) 음영처럼 그림자처럼 아이들의 미소가 번진다. 미소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온다. 번진다. 아이들은 웃으며 잊고 이내 사라진다. 준희의 손가락이 얼굴을 폭, 가리고 너는 말이 없다. 윤서는 달걀처럼 매끈해지고 해민은 풍선처럼 떠 있다. 미소들. "언제인지도 모른 채 돌아서 가버린 것들." 은결은 미소를 음미하고 온 몸으로 사진을 채운다. 그것은 너무 강력해 찻잔 속 태풍처럼 보인다. 고요의 순간이 지나가고 너는 말이 없다. "잎사귀를 통과한 11시의 햇살이 그림자를 빗나간다. 그림자가 비로소 놓여나 걷기 시작한다. 물가를 걷듯 천천히 움직인다. 나무 의자들이 떠다닌다." 윤서는 어디로 간걸까. 보이지 않는 너의 미소가 나무처럼 흔들린다. 묻지 말 것! 네가 깜박인다. 점과 멸 사이에 기호들이 있다. 웃음의 형식은 부드럽고 "아직도 남은 휘파람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 해." 그렇게. 시간은 미소로 남고 기억은 완고하다. "부드러움이 만드는 이런 완강함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기억은 덧댄 시간들의 총합이기에 잊고 잊으며 다시 잊는 기억을 되돌릴 수 없기에, 순간에 실린 미소가 너희를 구원할거야. "깜박이는 눈처럼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 후 그 기억만으로 살아야 하지." 

미소만 남기고 떠난 여덟 아이들은 어디로 간걸까요.
by 파란 | 2018/02/13 13:27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608] 졸업식 풍경7
[아이의 얼굴608] 졸업식 풍경7

졸업 오일 째, 오늘은 아이가 진학할 고등학교 예비소집일이다. 주희, 해민, 은애, 혜원, 은결 이렇게 다섯명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그 사실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될까. 잘 모르겠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해맑고 근심이 없(어 보인)다. 아이들의 세계는 평평하고 고르고 일매져서 모난 돌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아이가 손짓한다. 화면 밖은 암전인데 아이가 손짓한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아이의 친구가 있다. Y는 안양상고행 티켓을 끊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래서, 아이는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여야 했다. Y는 친구들과 일상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사진 속 시간은 아이들의 편이다. 사진 안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안도한다. 





by 파란 | 2018/02/13 13:27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1)
[아이의 얼굴607] 졸업식 풍경6
 
[아이의 얼굴607] 졸업식 풍경6

[아이 증언에 의하면) 다빈은 잘 웃고 운동 좋아하고, 특히 농구, 공부 잘 하고 의리 있고 인정 많은 아이다. 아이는 강당을 쓸 듯 돌더니 친구 다빈을 찾아냈다.

"다빈아, 나랑 사진 찍자!"

아이들의 손키스 그리고 우정 한 스푼, 시인 K는 '없는 未來'(김종삼 <생일>)를 말하지만 아니, 그런 건 없는 거야, 우리 다시 내일 만나, 라고 내민 손들이 환호작약 한다. 내가 너의 微風이 되어줄께, 내가 너의 不滅의 平和가 되어줄께, 내가 너의 天使가 되어줄께, 내가 너의 音樂이 되어줄께, 내가 너의 神父가 되어줄께,1)
우리 다시 만나자.

1) 이중섭 <미사에 참석한 이중섭씨> 부분 인용
by 파란 | 2018/02/13 13:26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2)
[아이의 얼굴606] 졸업식 풍경5
 
[아이의 얼굴606] 졸업식 풍경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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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서처럼 유령들의 향연을 본 사람들은  유령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연회를 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1)다.

2
'유령들의 향연'(발터 벤야민)에 초대받은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서 있었다. 아이들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찍을 수 있을까. 내가 그곳에 대해 쓸 수 있을까. 벤야민의 말은 옳았다, "내가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것은 이런 꿈이었다."(158쪽) 그 시간, 나는 그 곳을 독점했다. 그러나 한편 뭐랄까, "유령이 바삐 움직이고 있던 장소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157쪽) 하지만 "그곳은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도 왠지 내가 잘 알고 있는 장소와 비슷했다."(157쪽)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유령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니며 구술을 받아적었다. 어린 유령들의 손에 꽃이 들려 있었다. 아이들이 입을 열면 꽃은 공기방울이 되고 제멋대로 떠다니다가 천정에 부딪혀 평, 하고 터졌다. 어린 유령들은 무/엇/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내밀거나 입을 열거나 걸음을 옮기거나 그것이 전부였다. "유령들은 그것들을 갖고 무엇을 하거나 그것들에게 무슨 짓을 하지도 않았다."(157) 

나는 산 증인, '유령들의 향연'을 듣고 본 산 증인, "그리고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던 일-나의 꿈-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158)

1)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어린 시절>, 새물결, 2007, 157-158쪽
by 파란 | 2018/02/13 13:26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591] 어떤 방백傍白
 
[아이의 얼굴591] 어떤 방백傍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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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을 묻는 일은 물속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 같다고, 물속에 대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리하여 물속에 혼자 집 짓는 일이라고 말했던가"(이승희 <안녕> 인용)

2 이승희를 읽으며 널 떠올렸다. 내가 찍는 네 사진들이 두텁게 쌓여가는데, 이상도 하여라, 너는 갈수록 얇아지고 물비늘 몇겹으로 겨우 남았다. 어쩐지 '아이의 얼굴'이 "물속에 혼자 짓는 집"처럼 느껴진다.
by 파란 | 2018/01/30 06:51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이근일 <아무의 그늘> 읽기21]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이근일 <아무의 그늘> 읽기21]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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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당신은 어떤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드문드문 옻칠이 벗겨진 탁자엔 두 개의 커피잔이 놓여 있고, 꽃잎이 날리는 뜰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이 생을 누리다가>) 내 앞에 커피잔 두 개가 놓여 있다. 그가 커피를 따르면 나는 마신다. 나를 따라 그도 마신다. 마신다. 커피가 준다. 준다. 잔이 비고 잔 둘레가 말라간다. 하얗게 말라간다. 커피잔에 "희디흰 꽃숭어리가 피어난다." 잔을 기울인다. 꽃숭어리가 떨어지고 꽃잎이 날린다. "꽃잎이 날리는 뜰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 고요하다. "죽음이 아름답다고" 잔에서 입을 뗀 당신이 말한다. "나는 잠시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과연 아름다운 죽음이란 게 있긴 한 걸까." 아름다운 죽음이라니. 하얗게 표백된 잔 둘레를 매만지며 나 고요 속에 잠긴다. 고요가 물러간 곳을 당신의 빈 자리가 채운다. 환하다. 잔이 페허가 되고 빈 터에 白이 가득하다. 

2
白에서 百으로. 가득한 百이 스스로 뺄셈 끝에 49가 되었습니다. 49는 <아무의 그늘>에 수록된 시편의 수이지요. 커피를 마시듯 마흔아홉 편 시를 매일매일 마셨습니다. 비어 백지가 될 때까지 시를 마셨습니다. 빈 백지는 허실虛室이지요. 허실에 앉아 말라가는 백지를 봅니다. 상백想白의 시간입니다. 그동안 스무 편의 '<아무의 그늘> 읽기'를 썼고 내 몸을 빠져나간 글자들이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몸은 다시 텅 빈 방이 되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방을 닦습니다. 텅 빈 방을 닦습니다. 하이얗게 방이 빛납니다. "텅 빈 방"(<아무의 그늘>)은 아무도 없고 고요합니다. 방이 白으로 들끓습니다.

1) 이근일 <아무의 그늘> 부분
by 파란 | 2017/11/18 19:15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1)
[아이의 얼굴575] 파스타 만드는 아이
[아이의 얼굴575] 파스타 만드는 아이

아이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만들었다. 아이가 재료를 손질했고(시금치, 표고버섯, 마늘, 미니파프리카) 아이로부터 넘겨받은 재료를 데치고 볶았다. 시금치는 아이가 데쳤고 소금간은 함께 봤다. 남은 시금치로 시금치나물을 만들었다. 시금치 친구 참기름, 소금, 깨가 우리를 도왔다.  

by 파란 | 2017/11/10 20:16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574] 사라진 유년
[아이의 얼굴574] 사라진 유년

옛집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삼풍파크타운으로 불리던 그곳, 2002.4.-2012.12., 옹근 십년을 살았던 그곳, 사라진 내 옛집. 이사 첫날, 골목 입구 전봇대에 매달려 펄럭이던 재개발 플랭카드가 소임을 다하고 철거됐다. 그러니까 방배동 시절을 끝내고 반월로 옮겨와 첫둥지를 튼 곳은 삼풍파크타운이었다. 그곳. 그 해 여름 아이가 태어났다. 집의 역사와 아이의 역사가 나란한데 아이의 한시절이 끝났다. 집이 골목이 가로등이 기억의 장소성 너머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유년 시절'(한스 카로사)이 끝났다. 그곳은 어린 시절의 끝이었고 청소년기의 첫발이었다."(호르헤 셈푸룬,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문학동네, 2017, 23쪽) 경미네 집 앞을 지나오며 아이에게 신음하듯 말을 건넸다. "우리 집이 사라졌다!"
by 파란 | 2017/11/10 20:15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이근일 <아무의 그늘> 읽기20] 포월하는 시
[이근일 <아무의 그늘> 읽기20] 포월하는 시

시인들이 월경한다. 월경의 방식은 여럿, 니체가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기 위해 초월을 꿈꿀 때 김진석은 포월로 응수한다. 왠지 포월은 한국적이다. 니체가 산뜻한 월경주의자라면 포월주의자 김진석은 끈적거린다. 넘되 뛰지 않고 박박 기어 넘어간다. 온 몸을 피투하는 대신 기투한다. 차안과 피안이 이접한다. 이접의 방식은 말그대로 접붙이기, 이를테면 이종교배이다. <아무의 그늘>에서 이근일은 벽을 뛰어넘는 대신 문을 열고 온몸을 끄을며 문 너머로 나아간다.(때로 그는 구도자처럼 보인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나. 그곳은 꿈이고(<당신이 모르는 당신에 대해>, <악행>, <폭설>, <협곡>, <풀밭에 물들 때까지>) 환상이고(<곰소>, <불면의 날>, <도넛>, <환희의 음악>, <우리는 다른 기차를 타고>) 기억이고(<해질 무렵>, <귀가>, <적막 속에서 우리는>) 코마 상태이고(<가물거리는 흰빛>, <노래가 그리는 동그라미를)) 물 속이고(<생일>, <불타는 해바라기>). 언어를 뛰어넘는 그것들, 그것들을 언어로 다독이며 잠재우고 얼래 시인 스스로 계송이 되어 자음과 모음 사이를 박박 긴다. 뛰어넘고 달음박질하는 언어를 붙잡아 바끄러매고 칭얼거림에 귀 기울이는가 하면 서로가 서로의 발을 묶고 한 땀 한 땀 그렇게 포월의 방식으로 <아무의 그늘>은 쓰여졌다.
by 파란 | 2017/11/05 09:32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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