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주에서 실비아를 찾아 헤맸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녀를 찾아,,,

by 파란
[임승유 읽기4] 변명
[임승유 읽기4] 변명

왜 자꾸 쳐다보니

벌써 몇 명은 알아챈 것이다. 뒤를 볼 것이다.

애들은 한 번도 날 안 보는 적이 없었어. 내가 안 본다면 모를까. 하지만 나는 나만 보고 있을 수 없는걸. 나만 보고 있으면 나를 어쩌지 못해 손톱이 잘려 나가는걸. 잘려 나간 손톱을 찾기 위해 책상 속도 뒤지고 사물함도 열어 보고. 너희 필통도 열어 보다가

뭐 하니

나갔다 온 네가 물어보면 응, 누가 자꾸 날 불러

그러면 너는 뒤도 안 보고 가버리는 것이다. 누가 나를 안 불렀으면 좋겠다. 불렀다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임승유 변명

메모> 변명은 누군가에게 날 변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 행위이다. 정작 변명을 위해 뒤를 돌아보면 너는 없다. 아니, 있었는데 너는 뒤도 안 보고 가버렸다. 나는 변명을 왜 하려는 걸까. 누군가 자꾸 날 보는데 인기척에 뒤돌아보면 너는 없다. "내가 안 본다면 모를까" "애들은 한 번도 날 안 보는 적이 없었어." 내가 그것을 아는 건 뭐 하니, 라고 나갔다 온 네가 자꾸 묻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는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뒤돌아보는 걸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목소리 때문에 뒤돌아본다. "누가 자꾸 날 불러" 내가 뒤돌아보면 너는 말한다. "왜 자꾸 쳐다보니" 내가 뒤돌아 볼 것을 "벌써 몇 명은 알아챈 것이다" 애들은 나를 항상 보고 있다. "내가 안 본다면 모를까" 뒤돌아보면 너는 없고 없지만 목소리로 있고 나는 "나만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러는 "나를 어쩌지 못해" 손톱을 깨문다. 손톱이 잘려 나가고 나는 "잘려 나간 손톱을 찾기 위해 책상 속도 뒤지고 사물함도 열어 보고" 네 "필통도 열어" 본다. "나갔다 온 네가" 내게 묻는다. "뭐 하니" 나는 뭐 하는 걸까. 뒤돌아보기와 손톱 물어뜯기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나를 "벌써 몇 명은 알아챈 것" 같다. 제발 "누가 나를 안 불렀으면 좋겠다. 불렀다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너의 말) "왜 자꾸 쳐다보니" (나의 말) 너는 없는데. (너의 말) "뭐 하니" (나의 말) "잘려 나간 손톱"이 보이지 않아. 

변명 대신 나는 결국 시집을 덮어야 했다.
by 파란 | 2020/11/18 19:32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희음 읽기8] 시적 분화-읽기의 즐거움
[희음 읽기8] 시적 분화-읽기의 즐거움


1
(시집 2부가 시작됐다.) 이상하지.  「아프지 않게 조금씩 버려지는 코뼈」를 읽으면 글을 쓰고 싶고  「우리는 키스한다」를 읽으면 키스하고 싶고  「서 있는 사람」을 읽으면 (어디가 됐든) 악다구니를 써대며 대기표를 뽑고 싶고  「앉아 있는 사람」을 읽으면 소파에 얼굴을 묻고 싶고  「배낭이 된 남자」를 읽으면 무한정 내 배낭에 책을 욱여넣고 싶고  「미아」를 읽으면 요의가 느껴지고. (...) 이 목록에 끝이 있을까. 끝은 “어디에 있어도, 어디에 숨어도 계속 찾아오는 거”( 「도로 끝, 그리고」)란 걸 우리는 안다. 이 목록에 끝은 없다. 그럼 “끝이 안 난다는 거네?” 글을 쓰거나 키스를 나누고, 악다구니를 부리면서 소파에 얼굴을 묻고, 배낭에 책을 욱여넣은 끝에 요의를 느끼는 이를테면 이런 일련의 몸짓들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알겠다. 하나는 다시 둘로 이어지고 넷으로 분화한 뒤 여덟에 이르러 수적 분열을 일으킨다. 시 안에서 이것들은 모두 가능하고 가능한 한 새벽이 오기 전 이것들을 모두 해볼 생각이다. 그저 나는 활자를 따라 읽을 뿐인데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

2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기에는 서로서로 맞물린 채 공존하는 두 운동이 있다는 사실이다.”(들뢰즈•가타리,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카프카론」, 1992, 문학과지성사, 114쪽) 쓰는 자와 읽는 자.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키기. 눈으로 손가락을 읽기. 손가락-눈. 눈-손가락. “운동의 두 가지 상태, 욕망의 두 가지 상태, (...) 두 가지 상태의 공존이 어떤 망설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선험적인 기준에 의지하지 않은 채 내재적 체험을 통해 욕망의 다의적 요소들을 더듬는 진지한 태도인 것이다.”(들뢰즈•가타리, 앞의 책, 115-116쪽)


by 파란 | 2020/11/15 08:48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희음 읽기7] 길, 복도, 말, 터널,
[희음 읽기7] 길, 복도, 말, 터널,

터널, 이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당장 생각나지 않아도 언젠가 생각나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고 구를 듯이 웃었다

언덕에 올랐다 보이지 않는 마을을 바라다보았다 바라다보아도 보이지 않던 마을을, 바라다만 보다가 바라보던 쪽으로 나는 걸어갔다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든 나온다

차가운 단어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 태웠다 그 재를 섞어 마시면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살을 발라내지도 않고 삼킨 것들이 내겐 이미 많았지만

터널, 이라는 말이 생각나 복도를 따라 달렸다

그곳에는 죽은 나무들과 살아 있는 나무들이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비상구 불빛을 막고 서 있는 건 달리는 사람이었다

달리는 사람은 막고 선 채로, 달리는 내게서 자꾸 멀어졌다

 - 희음 삼킨 것들

메모> 정말 그럴까요.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든 나온다는 당신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그 말을 떠올리며 달렸는데 복도 같은 곳이 나오고 터널, 하고 말을 내뱉자 돌연 내 몸이 갇혔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당장 생각나지 않아도 언젠가 생각하면 괜찮은 거라고 그랬는데 터널이란 말을 떠올리지 말아야 했을까요. 복도 끝에 비상구 불빛을 막고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입니다. 내가 다가갈수록 그는 멀어집니다. "달리는 사람은 막고 선 채로, 달리는 내게서 자꾸 멀어졌다" 자꾸만 멀어지는 사람을 따라 나를 가둔 터널도 무한정 길어지고 복도를 따라 달릴수록 내 입 안 터널, 이라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돌아보니 터널 안에 살을 발라내지도 않고 삼킨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이곳은 너무 캄캄해. 웨이터, 웨이터, 목소리는 빛처럼 칠흑을 따라 번져 가는데, 웨이터는 없고, 목소리로만, 우리는 기다리고, 웨이터, 웨이터, 조금만 더 우리는 기다려도 되나요. 보이지 않는, 만져지지 않는 우리를, 우리가 찾아 돌아오도록, 웨이터, 웨이터, 부르면서 우리는, 웨이터, 웨이터, 다른 것이 될지도, 더 좋은 다른 것이, 될지도 모르죠."(희음,「Mass」 부분)

by 파란 | 2020/11/15 06:44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양안다 읽기1] 시, 꿈, 발작, 윤리
[양안다 읽기1] 시, 꿈, 발작, 윤리

1
삶은 살아갈수록 양파 껍질 같아서 까도 까도 드러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알멩이가 두려워 우리는 산다는 일을 포장하거나 숨긴다. 비로소 잠에 이를 때 포장을 풀고 자신을 드러내는데 잠 속에서 "유년"(「우리들은 프리즘 속에서 갈라지며(하)」)은 시작된다. "다시 유년으로 돌아간다면/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해야지/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꿈을 깨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속이는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그 세계 속 사람들은 왕왕 말한다. "눈 한번 딱 감고 모른 척하라고/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않겠냐고"

2
나는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발작"한다. 발작 증세는 다음과 같은데 "불면에 매료"되거나 "끼니를 거르고 창고에 쌓인 병들을 함께 비우"거나 때로 "노래"한다. 그럴때면 "우리는 각각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안다. 나는 "지금 경계선에 있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내 손엔 이미 "알약"이 쥐어져 있는 걸. 
그런 나더러 친구들은 말한다. "네가 나빠. 다들 잘 감추며 사는데. 발작하는 네가 나쁜 거야." 내 눈은 자꾸 "옥상 아래"로 향한다. "친구의 말에 나는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몇 마리의 병아리가 절뚝거리고 있었다 땀에 젖은 체육복을 입고 나는 덜덜 떨었다"

3
시는 무엇인가요. "들어 봐/ 이것은 너를 괴롭히는 꿈의 윤리야"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꿈" 속에서 (이것은 반복인데) "우리는 각자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by 파란 | 2020/06/07 09:27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영광 읽기4]
[이영광 읽기4] 오늘

그립고 무섭던 어제는 사라져버리는 법이 없었다
그립고 캄캄한 내일이 엄습하지 않는 날도 없었다

핫이불 한 채에 온 식구가 몸을 묻은 오늘의 밤에
결코 죽지 않는 어제와 내일이 비집고 들어와
미어터지던,

오늘을 다 눌러 죽이고 나서야
지쳐 잠들던

 - 이영광 <단칸>

[메모] 어제는 무섭고 내일은 캄캄하다. 아무리 무서워도 어제는 복기되고 복기되어야 하고 아무리 캄캄해도 밀린 공과금처럼 내일은 온다.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무섭던 어제가 지나고 캄캄한 내일이었는데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시인은 오늘을 말하지 않는다. 오늘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가 무서운 것이라면 오늘은 무섭지 않다. 닥치면 무서움은 저만치 물러선다. 내일 역시 마찬가지인데 캄캄한 것이 내일이라면 오늘은 뚜렷하다. 오늘을 시로 풀어낼 순 없을 것이다. 겨우 어제를 회고하고 근사치에 기대 내일을 전망할 뿐 시는 오늘을 모른다. 어제와 내일이 비집고 들어와 오늘이 미어터진다. (오늘이란) 단칸방이 미어터진다. 미어터지려면 그러므로 오늘은 철저하게 단칸방이어야 한다. 오늘은 여분을 모른다. 무서움을 모르고 캄캄함을 모른다. 시가 다다를 수 없는 오늘을 깨닫게 해주는 단칸방은 얼마나 고마운 것이냐. 핫이불 한 채에 어제와 내일이 몸을 묻고 오늘을 견딘다.




by 파란 | 2020/05/19 06:41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8] '푸른 사과'(이수명)
[이수명 읽기8] '푸른 사과'(이수명)

사과를 던지자 최초의 벽이 생긴다. 사과는 벽에 맞아 떨어진다. 벽에 맞는 순간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조각들로 흩어졌다가 사과는 다시 뭉친다.

사과를 던지자 벽이 뚫린다.

푸른 사과들이 도로 양변에 늘어서 있다. 그중 하나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머리 위로 내가 던진 사과가 날아간다.

 - 이수명 「푸른 사과」

1
시는 본래 그 자리에 있고, 있지만 서점 매대에 누워 있거나 또는 물류창고에 쌓여 있을 뿐이고, 내가 구입하거나 주문해 읽을 때 비로소 시는 생긴다. 시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내가 집어든 '푸른 사과'(이수명)는 특별하다. 만원에 여섯 개씩하는 이수사계시장 사과와 다르다. 같은 사과인데 '푸른 사과'는 모양이 다르고 냄새가 없다. 무형무취無形無臭하지만 그래도 사과는 '사과'다. '푸른 사과'가 내 마음을 쪼갠다. 내 마음 역시 '푸른 사과'를 쪼갠다. 행과 연으로 흩어졌던 '푸른 사과'가 내 눈을 통과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흩어졌던 '푸른 사과'가 다시 시의 몸을 입는다.

2
이번엔 시를 던지기로 하자. 시를 던지자 대상이 뚫린다.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 낙장落張. 그중 하나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머리 위로 내가 던진 사과가 날아간다. 사과는 '푸른 사과'다.

3
시를 읽을 때 나는 벽 앞에 선 기분이 든다. 알고 있던 언어였는데 당혹스럽다. 어떻게 해야 벽이 뚫릴까. 벽 너머에 '푸른 사과'가 있다. 나는 아직 이편에 있고.
by 파란 | 2020/05/10 21:15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7] 몽상과 착란
[이수명 읽기7] 

커다란 케익을 놓고
우리 모두 빙 둘러앉았다
누군가 폭탄으로 된 초를 꽂았다.
케익이 폭발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뿌연 먼지 기둥으로 피어오르는 폭발물을
잘라서 먹었다

 - 이수명 「케익」

1
커다란 케익을 놓고/ 우리 모두 빙 둘러앉았다/ 누군가 폭탄으로 된 초를 꽂았다./ 케익이 폭발했다." '몽상과 착란'(게오르크 트라클)의 시간. "나는 들어간다 누군가의 꿈속으로. 그 속엔 황톳물이 흘러가고 말리지 못한 꽃들이 떠다니고 내 노래들이 휩쓸린다"(「누군가」) '꿈'이 '몽상'이라면 흘러가는 황톳물, 떠다니는 꽃, 휩쓸리는 노래들은 '착란' 아닌가. 그렇다. 몽상에 머무는 한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케익이 폭발한다. 물론 그것은 몽상이다.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착란이다. 몽상과 착란. 나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 

2
우리 같이 아름다운 노래 불러요.

3
"그리고/ 뿌연 먼지 기둥으로 피어오르는 폭발물을/ 잘라서 먹었다" 
by 파란 | 2020/05/10 02:08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6] 이수명 리부트
[이수명 읽기6] 이수명 리부트

1
이수명을 오랫동안 읽었다. 순차적 읽기. 그렇지 않나. 어떤 시집을 읽고 좋으면 무작정 다음 시집을 기다리는 패턴, 대체로 시집읽기는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작년 가을부터 이수명을 다시 읽고 있다. 시집읽기는 두 종류가 있다. (쓰기는 잘 모르겠다.) 따라읽기와 다시읽기. 따라읽기는 연대기순으로 진행된다. 반면 다시읽기는 어떤 계기가 뒤따른다. 어떤 계기 없이 다시읽기는 불가능하다.

2
2018년 초여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물류창고』(2018)가 보인다. 1부에 실린 같은 제목의 「물류창고」 연작 10편은 정교했다. 창고에 들어가 내가 본 것을 당신에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보인 로직에 나는 매료됐다. 그것이 첫번째 계기인데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를 ‘발견’한 결정적 계기는 시가 아닌 평문이었다. 2018년 여름, 「물류창고」 연작을 만나기 전 이미 두 번의 계기가 내게 있었다. 

2015년 『쓺』 창간호가 보인다. 그곳에 수록된 평문, <내가 그녀임을 알았을 때 김구용의 「구곡」>을 읽으면서 평론가-이수명의 잠재성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김구용으로 들어가는 문을 이수명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상이 보인다. ‘이상의 <오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란 부제가 딸린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2013)가 주인공인데 이상문학회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평론가-이수명도 글을 보탰다. 김인환과 황현산이 공동으로 첫머리 글을 쓰고 평론가 15명이 오감도 연작 전편에 해석을 붙인 프로젝트였다. 오감도 제10호에 글을 붙인 이수명의 평문 「세계는 나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서늘하면서 뜨거웠다.  평문은 명징했고 형식적으로 스타일리쉬했다. 내가 지금 이 글 앞에 있다, 란 자의식을 가지고 읽게 된 이수명의 첫글이었다. 시인이든 평론가든 누가 됐든 그런 종류의 글 하나씩은 꼭 있지 않나.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에 실린 이수명의 글이 내겐 그랬다.

3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1998)를 헌책방에서 산 건 서른 중반 쯤인데 구입해두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습니다. 이제 읽을 때가 된 것 같아요. 따라읽기 했던 이수명을 다시읽기 하기까지 그러니까 구입하고 밀쳐둔 그의 두번째 시집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가 제 자리를 찾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돌아야 했던 걸까요. 그건 시집의 운명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독자의 운명이기도 할거예요. 그런데 어떡하나, 첫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1995)가 보이지 않네요
.
by 파란 | 2020/05/09 14:40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5] 시와 함께
[이수명 읽기5] 시와 함께

그가 걸어가고 있는데 낡은 집의 창문이 열리더니 한떼의 새들이 쏟아져 나왔다. 새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그의 발목을 쪼아댔다. 발목이 사라지자 그는 없는 다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새들은 그를 쫓으며 그의 팔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맞은편 창문이 열리자 그를 끌고 우르르 그 안으로 사라졌다.

- 이수명 <새와 함께>

1
시집(<붉은 담장의 커브>)이 열리더니 한떼의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들은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 내 발목을 쪼아댔다. 발목이 사라지자 난 없는 다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시들은 나를 쫓으며 내 팔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맞은편 시집(<직선 위에서 떨다>)이 열리자 나를 끌고 우르르 그 안으로 사라졌다. 

2
낯선 시집을 열면 으레 그렇듯 생경한 시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들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포박하고 시집이 닫힐 때까지 나는 의사수인擬似囚人이 된다. 형기는 시집마다 다른데 영어囹圄의 몸이 된 나는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옥 바깥을 바라보는 게 활동의 전부다. 간수(시인)는 보이지 않고 시들은 매일 매일 나를 쪼아댄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형량을 헤아리지만 형기는 줄어들지 않고 매 끼니마다 새로운 시들이 눈을 습격하고 마음을 꿰뚫는다. 나는 도망가려고 발버둥친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시집의 하얀 색 표지가 전부다. 검은 색 글씨가 선명하다. 붉/은 담/장/의 커/브. 저 담장을 나는 넘을 수 있을까. 붉은 담장을 넘으면 커브가 나올텐데 나는 커브를 돌 수 있을까. 오늘 배식은 <새와 함께>이다. 시와 함께 나는 감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3
일흔 편의 시를 다 읽으니 옥문이 열리더라.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기둥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이수명 <침입자>) 물론 그는 이영광이다. 감옥(<붉은 색 담장의 커브>)을 벗어났는데 다시 감옥(<직선 위에서 떨다>)이다. 선명하게 하얀 색 표지가 보인다. 아직은 문 밖이다. 희미하게 문지기(이영광)가 보인다.

4
"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이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그에게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게 되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돼오.> 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물러섰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고 몸을 굽힌다."(<법 앞에서>, <집으로 가는 길>, 1984, 민음사, 49쪽)

5
나는 자발적 수인囚人이다. 詩여, 나를 포박해다오!
by 파란 | 2020/05/08 23:27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4] 시적 순간
[이수명 읽기4] 시적 순간

복도 끝에 너는 서 있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나는 허리를 구부렸다.

그때 피어난 바닥의 꽃을 향해
그때 숨어든 꽃의 그림자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구부러진 채
나는 펴지지 않았다.

복도를 떠돌던
나의 빛은 구부러진 채
나의 나날들은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다.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그때 흔들린 꽃에 대해
그때 사라진 꽃의 그림자에 대해

나는 말하지 않았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구부러진 채

 - 이수명 <나를 구부렸다>

메모> 너에게 가기 위해 가지 않아야 한다. 너에게 가지 않기 위해 나는 허리를 구부린다. 하기 위해 하지 않고 하지 않기 위해 몸을 구부린다. 몸을 구부리기. 그것은 하기의 극대화이고 최대치다. 허리를 굽히니 보인다. 저만치 복도 끝에 서 있는 너가 보인다. 바닥에 피어난 꽃이 보인다. 꽃은 숨은 꽃이고 존재방식은 그림자인데 너에게 다가가면 너는 모습을 감춘다. 나는 너에게 가기 위해 가지 않고 가지 않기 위해 허리를 구부린다. 바라봄은 빛이다. 시선도 구부러진다. 너를 보려고 너를 보지 않고 너를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구부린다. "그렇게 나의 나날들은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다." 보는 눈은 만지는 손이 되고 너를 향해 손을 내밀자 너는 사라진다. 너는 본래 실체(꽃)였는데 너를 보려고 보지 않은 탓에 너는 비실체(그림자)가 되었다. "사라진 꽃의 그림자"를 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비로소 나는 안도한다. 나는 너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너에게 닿기 위해 나는 너에게 닿지 않아야 하는데 허리를 구부리고 시선을 구부리자 사라짐의 방식으로 너는 스스로 존재증명을 한다. 은현隱顯. 여전히 너는 복도 끝에 서 있고 나는 구부러진 채 어떤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by 파란 | 2020/05/08 00:47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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