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주에서 실비아를 찾아 헤맸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녀를 찾아,,,

by 파란
[아이의 얼굴620] 졸업식 풍경14
 
[아이의 얼굴620] 졸업식 풍경14

1
"마주 않은 네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동안 너와 나의 등 뒤로 세상도 잠시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내가 살던 집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고, 꽃들이 피었다 졌다 한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을 왔다 가는 동안 시소를 탄다. 이 세계는 내릴 수 없는 세계. 그러는 동안 저녁이 오고, 밤이 오고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자란다."(이승희 <시소의 세계에서 우리는> 인용)

2
내가 앉으면 네가 붕 떠오른다. 그것이 시소의 원리다. 네가 앉을 차례다. 내 몸이 허공에 들린다. "균형은 움직일 때만 존재하는 질서", 그래 그것은 시인의 말이야. 우리는 스스로 공평하다. 네 품에 안긴 꽃다발에 목화가 폈다. <도깨비>를 너무 많이 본 탓이겠지. 그래도 괜찮다. 연곡해변이든가, 안목해변이든가, 지난 봄 나는 아빠와 그곳을 찾았더랬다. 햐안 물보라가 부서지는데 연인들이 수줍게 서있더라. 하얀 물보라를 닮은 목화가 플래시 소리에 팡팡 터지고 바다갈매기가 먼 바다를 향해 나는데 목화의 운명을 나는 희미하게 예감했더랜다. 너를 지나치겠다. 내 등 뒤에서 너는 수평을 맞춰 행진해야 하리라. 그래, 말해보자. "어디서나 시소의 세계는 시작된다. 어제의 시소는 녹슬고 오늘의 시소는 이미 낡았다. 꽃 피는 집들은 이제 없다." 졸업은 뭘까. 그것은 끝일까, 다른 시작일까. 어제는 끝일까 시작일까. 오늘은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마주 선 네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동안 너와 나의 등 뒤로 세상도 잠시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이별의 시간, 하지만 새로운 만남을 꿈꾸는, 아니 그 둘은 진실이 아니야. 진실은 너와 나의 등 사이에 있지. 아슬하게, 균형이, 그곳에, 그래 우선 우리 한 발 앞으로 내딛자. 

by 파란 | 2018/02/23 06:18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1)
[아이의 얼굴619] 졸업식 풍경13

 
[아이의 얼굴619] 졸업식 풍경13

“(...)
그래도 여기 좀 있을게
그냥 조금만 더

노래가 끝나면
바다 너머로 기린을 보러 갈 거야
(...)”1)

2
노래가 물처럼 흐른다. 너는 펭귄, 나는 돌고래, 우리 같이 기린 보러 가자. 시간은 누구 편일까, “여기 좀 있을게 그냥 조금만 더”, 시간은 째각째각, 난 하마를 볼거야, 하마라니, 기린 대신 하마, 그래 하마를 보러 가자, “노래가 끝나면” 점수가 나올까, 백점 먹고 하마 보러 가자. 노래는 돌림노래, 펭귄들아 돌고래들아 쉬지 말고 노래를 부르렴, 시간은 아직 우리 안에, 물처럼 시간은 흐르겠지, 나는 펭귄 너는 돌고래, 우리 같이 노래 부르자.

1)이승희, ‘시인의 말’,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2017, 문예중앙
by 파란 | 2018/02/15 07:25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618] 졸업식 풍경12
[아이의 얼굴618] 졸업식 풍경12

1
"트랙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너와 나의 셔틀콕은 계속된다."(이승희 <한밤의 셔틀콕> 인용)

2
셔틀콕은 깃털 달린 공인데 그것은 코르크에 열여섯장의 깃털을 심은 것인데 너와 내가 던진 횟수만큼 깃털이 줄고 이내 마지막 깃털이 빠져나갈 텐데 트랙을 떠난 사람들은 무얼 하나, "잠시 세계는 보였다가 사라지고, 이 세계를 벗어난 셔틀콕을 바라볼 뿐, 그게 우리들의 세계", 깃털 없이 코르크가 난다, "코르크 밤의 허공을 향해 헛손질하는 마음", 친구들아 우리 삼년 동안 즐거웠었지, “셔틀이 없는 우리들의 세계"가 다시 시작될 거야.
by 파란 | 2018/02/15 07:25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1)
[아이의 얼굴617] 졸업식 풍경11
 
[아이의 얼굴617] 졸업식 풍경11 

김현 시인은 귓속말을 일러 "귀에 대고 말을 하면/ 말은 귀에 담긴다// 내 입술이 네 귀와 가까워지는 말"(<귓속말>)이라고, 그에 따른다면 귀는 말의 저장고다.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긴다.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소곤거린다.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흰 목소리로 자꾸 이야기한다."(앞의 시)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휜 목소리로 자꾸 이야기 하기. 귓속말의 세부다. 귓목말은 중언이고 부언인데 그 안에 담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소곤거릴 뿐, 귀 가까이에 바람처럼 스치는 방식으로 그렇게 존재한다. "바람은 가만가만. 움직임 따위가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한결같이 수선스럽지 않은 모양으로. 바람은 조용조용." 시인은 다시 묻는다. "말은/ 귀의 어디쯤 담겨 있을까" "담기지 않는 말은/ 어디까지 흘러갈까"라고도 묻고 "흘러가는 말은/ 들어오는 말일까 나가는 말일까"라고도 묻는다. "귀의 저 깊은 곳/ 말이 가닿는 태초는 어떤 곳일까" 김현은 최종적으로 선포한다. '귓속말'은 "거기까지 가고/ 거기에서 멈추고/ 거기로만 간다" 거기는 미지의 영역이겠지. '거기'는 듣는 이에게 가까운 곳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이다. 가까이. 내가 네게 "귀에 대고 말을 하면 말은 귀에 담긴다" 하지만 "시작된 곳에서/ 한잎 흰 숨이 되는 말". 귓속말의 생래가 이와 같다. 아무 뜻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 바람처럼 한숨처럼 농담처럼 오고가는 말, 아이에게서 아이에게로 말이 떠다닌다. 



by 파란 | 2018/02/15 07:24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609] 졸업식 풍경8
 
[아이의 얼굴609] 졸업식 풍경8

졸업식 전날 아이와 함께 심야꽃집투어를 했다. (아이는 졸업 한달전 내게 구체적으로 꽃다발을 주문한 바 있다) 우리의 가시권 내에 있는 꽃집들에 주파수를 맞추고 레이더를 돌렸다. 산본, 금정, 범계, 평촌을 돌던 레이더가 돌연 상록수역에 가 멈춘다. 주주플라워는 상록수역 한국통신사거리에 있다. 꽃을 고른 후(생화 한 다발, 드라이플라워 한 다발) 꽃가게 주인과 가격 흥정을 벌였다. 아이는 창피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션을 완수했고 기쁜 나머지 콧노래를 부르며 졸업식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당고개행 전동차에 올랐다. 그렇게 졸업식 전야를 보냈다.

아이가 밤하늘 아래 노래를 부른다.

by 파란 | 2018/02/13 13:27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610] 졸업식 풍경9
 
[아이의 얼굴610] 졸업식 풍경9 

1
"불시착한 생각들이 공원에 앉아 있다. 가만히 울고 있다. 투명한 새들이 나무에 앉아 있다. 숲의 기억을 쥐고도 펼 수가 없다. 언제인지도 모른 채 돌아서 가버린 것들이 있다. 그런 일들이 날마다 쌓여간다. 어떤 꽃이 피든 그것은 그것대로의 생. 내게 그런 것 묻지 말길. 앞사귀를 통과한 11시의 햇살이 그림자를 빗나간다. 그림자가 비로소 놓여나 걷기 시작한다. 물가를 걷듯 천천히 움직인다. 나무 의자들이 떠다닌다. 잠시 앉았던 사람들이 치우고 가지 않은 불안의 힘. 아직도 남은 휘파람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 해. 부드러움이 만드는 이런 완강함의 질서. 아무도 앉지 않아도 시소는 항상 한쪽 바닥에 닿아 있지. 투명해지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세계. 새들이 그렇지. 새들의 실핏줄 속으로 차오르는 깜깜한 어둠에 대하여 공원은 모른 체하지. 깜박이는 눈처럼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 후 그 기억만으로 살아야 하지, 공원은 그렇지."
- 이승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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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한 생각들이 공원에 앉아 있다. 가만히 울고 있다. 투명한 새들이 나무에 앉아 있다. 숲의 기억을 쥐고도 펼 수가 없다. 언제인지도 모른 채 돌아서 가버린 것들이 있다. 그런 일들이 날마다 쌓여간다. 어떤 꽃이 피든 그것은 그것대로의 생. 내게 그런 것 묻지 말길."(이승희 <공원> 인용) 음영처럼 그림자처럼 아이들의 미소가 번진다. 미소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온다. 번진다. 아이들은 웃으며 잊고 이내 사라진다. 준희의 손가락이 얼굴을 폭, 가리고 너는 말이 없다. 윤서는 달걀처럼 매끈해지고 해민은 풍선처럼 떠 있다. 미소들. "언제인지도 모른 채 돌아서 가버린 것들." 은결은 미소를 음미하고 온 몸으로 사진을 채운다. 그것은 너무 강력해 찻잔 속 태풍처럼 보인다. 고요의 순간이 지나가고 너는 말이 없다. "잎사귀를 통과한 11시의 햇살이 그림자를 빗나간다. 그림자가 비로소 놓여나 걷기 시작한다. 물가를 걷듯 천천히 움직인다. 나무 의자들이 떠다닌다." 윤서는 어디로 간걸까. 보이지 않는 너의 미소가 나무처럼 흔들린다. 묻지 말 것! 네가 깜박인다. 점과 멸 사이에 기호들이 있다. 웃음의 형식은 부드럽고 "아직도 남은 휘파람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 해." 그렇게. 시간은 미소로 남고 기억은 완고하다. "부드러움이 만드는 이런 완강함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기억은 덧댄 시간들의 총합이기에 잊고 잊으며 다시 잊는 기억을 되돌릴 수 없기에, 순간에 실린 미소가 너희를 구원할거야. "깜박이는 눈처럼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 후 그 기억만으로 살아야 하지." 

미소만 남기고 떠난 여덟 아이들은 어디로 간걸까요.
by 파란 | 2018/02/13 13:27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608] 졸업식 풍경7
[아이의 얼굴608] 졸업식 풍경7

졸업 오일 째, 오늘은 아이가 진학할 고등학교 예비소집일이다. 주희, 해민, 은애, 혜원, 은결 이렇게 다섯명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그 사실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될까. 잘 모르겠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해맑고 근심이 없(어 보인)다. 아이들의 세계는 평평하고 고르고 일매져서 모난 돌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아이가 손짓한다. 화면 밖은 암전인데 아이가 손짓한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아이의 친구가 있다. Y는 안양상고행 티켓을 끊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래서, 아이는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여야 했다. Y는 친구들과 일상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사진 속 시간은 아이들의 편이다. 사진 안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안도한다. 





by 파란 | 2018/02/13 13:27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1)
[아이의 얼굴607] 졸업식 풍경6
 
[아이의 얼굴607] 졸업식 풍경6

[아이 증언에 의하면) 다빈은 잘 웃고 운동 좋아하고, 특히 농구, 공부 잘 하고 의리 있고 인정 많은 아이다. 아이는 강당을 쓸 듯 돌더니 친구 다빈을 찾아냈다.

"다빈아, 나랑 사진 찍자!"

아이들의 손키스 그리고 우정 한 스푼, 시인 K는 '없는 未來'(김종삼 <생일>)를 말하지만 아니, 그런 건 없는 거야, 우리 다시 내일 만나, 라고 내민 손들이 환호작약 한다. 내가 너의 微風이 되어줄께, 내가 너의 不滅의 平和가 되어줄께, 내가 너의 天使가 되어줄께, 내가 너의 音樂이 되어줄께, 내가 너의 神父가 되어줄께,1)
우리 다시 만나자.

1) 이중섭 <미사에 참석한 이중섭씨> 부분 인용
by 파란 | 2018/02/13 13:26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2)
[아이의 얼굴606] 졸업식 풍경5
 
[아이의 얼굴606] 졸업식 풍경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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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서처럼 유령들의 향연을 본 사람들은  유령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연회를 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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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의 향연'(발터 벤야민)에 초대받은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서 있었다. 아이들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찍을 수 있을까. 내가 그곳에 대해 쓸 수 있을까. 벤야민의 말은 옳았다, "내가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것은 이런 꿈이었다."(158쪽) 그 시간, 나는 그 곳을 독점했다. 그러나 한편 뭐랄까, "유령이 바삐 움직이고 있던 장소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곳이었다."(157쪽) 하지만 "그곳은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도 왠지 내가 잘 알고 있는 장소와 비슷했다."(157쪽)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유령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니며 구술을 받아적었다. 어린 유령들의 손에 꽃이 들려 있었다. 아이들이 입을 열면 꽃은 공기방울이 되고 제멋대로 떠다니다가 천정에 부딪혀 평, 하고 터졌다. 어린 유령들은 무/엇/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내밀거나 입을 열거나 걸음을 옮기거나 그것이 전부였다. "유령들은 그것들을 갖고 무엇을 하거나 그것들에게 무슨 짓을 하지도 않았다."(157) 

나는 산 증인, '유령들의 향연'을 듣고 본 산 증인, "그리고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던 일-나의 꿈-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158)

1)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어린 시절>, 새물결, 2007, 157-158쪽
by 파란 | 2018/02/13 13:26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아이의 얼굴591] 어떤 방백傍白
 
[아이의 얼굴591] 어떤 방백傍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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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을 묻는 일은 물속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 같다고, 물속에 대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리하여 물속에 혼자 집 짓는 일이라고 말했던가"(이승희 <안녕> 인용)

2 이승희를 읽으며 널 떠올렸다. 내가 찍는 네 사진들이 두텁게 쌓여가는데, 이상도 하여라, 너는 갈수록 얇아지고 물비늘 몇겹으로 겨우 남았다. 어쩐지 '아이의 얼굴'이 "물속에 혼자 짓는 집"처럼 느껴진다.
by 파란 | 2018/01/30 06:51 | 아이의 얼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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