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동네에 몇 해 전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 아파트 단지의 이름은 '이편한세상'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과 동시에 초등학교가 신설됐다. 반월역의 게이트가 증설됐고, (물론 의도치 않았으리라 믿지만) 거성교회가 증축을 마쳤다. 입주를 전후해 성격이 모호한 유치원도 단지 내에 만들어졌다. 그곳이 영어학원인지 유치원인지 나는 아직까지도 잘 모른다. 진주 이모집에서 이제 막 올라온 딸아이가 그곳엘 일년 남짓 다녔던 기억이 난다. 말하자면 일종의 배신인 셈인데 진주이모집에 가기 전 다녔던 성지어린이집에 아이를 더 이상 보낼 수 없었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촌티를 좀 벗고 싶었고 그곳 주민은 아니었지만 대규모아파트단지의 수혜를 우리도 누리고 싶었다. 아이가 그곳 원생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치원 측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몇몇의 엄마들이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는 킹즈키즈를 나왔다. 일련의 사건을 겪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날아온 입학통지서가 아이들과 엄마들을 양분시켰다. 내가 살고 있는 삼풍파크타운을 기점으로 유치원졸업반 아이들이 신설된 창촌초등학교와 기존의 반월초등학교로 나뉜 것이다. 아이는 간당간당하게 창천초등학교로 배정됐다. 마찰은 계속됐다. 나와 아내 그리고 딸아이가 팔년째 살고있는 우리집을 가리켜 아이의 친구 하나가 은결이네는 거지집에 산다고 놀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속절없는 이야기 같지만 실탄은 충분하다. 갈림길에 선 나는 가끔 옥상에 올라가 우리집 앞에 포진해 있는 '이편한세상'을 지긋이 바라보곤 한다. 그것은 점령군을 닮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든 총에 실탄을 장전한다. 그리고 쏜다. 실탄은 엇나가거나 공중에서 스스로 분해된다. 나는 그 광경을 조금은 어이없어 하며 바라본다. 유쾌하지 않은 풍경이다.
조금, 아니 많이 비약해서 말한다면, 내집 옥상에서 바라본 '이편한세상'은 이명박을 닮았다, 아니 학벌주의를 닮았다, 아니 수도꼭지 틀어놓고 설거지하기를 닮았다,
(계속)
"대답을 찾는 대신 질문을 구성하는 방법을 찾아내기"(정성일). 우리는 문학을 일종의 판결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대다수의 독자. 판결문의 질료는 물론, 윤리와 도덕이겠죠:대다수의 평자. 문학이란, 그 장르의 구분에 관계 없이, 세계를 담고 있는 언어가 다시, 세계를 향해 저 속깊은 심연으로부터 내지르는 도저한 질문의 되풀이다,라고 한다면 어떡하겠습니까.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종호가 <현대문학> 11월호에 쓴 글과 정성일이 류상욱의 <영화의 철학과 미학-프랑스 영화학의 경향>에 쓴 추천의 글을 읽고 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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