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주에서 실비아를 찾아 헤맸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녀를 찾아,,,

by 파란
[송진권 읽기11] 아이와 나


[송진권 읽기11] 아이와 나


우리는 엄청나게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그런 작은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어 그깟 채송화야 밟히면 어떻고 개미들이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면 어때 염소 떼가 밭을 뭉개고 닭들이 집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면 좀 어떠냐고 지금 너무 바쁘다니까

제발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저쪽으로 좀 가 줄래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야 도무지 다른 것엔 신경 쓸 틈이 없다니까 매미가 허물을 못 뚫고 나오는 거 따위나 병아리 한 마리 태어난 건 아무것도 아니야


왜 이래, 그깟 늙은 개 한 마리 죽은 거 가지고 눈물이나 흘리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시간 없단 말야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니까 엄청나게 아주 중요한 일 때문이라니까

 - 송진권 <엄청 아주 중요한>

아빠 나랑 놀자! 돌림노래인 줄 알았다. 언제까지 계속될 줄 알았는데 (이것 역시 거짓말이지만) 이 말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고 어린 아이였던 아이는 자라 언젠가 어른이 된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면,, 아니 알았다 한들 무슨 소용 있었을까. 아이가 부를 때마다 나는 "엄청나게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그런 작은 것에 신경 쓸 틈이 없"다고, "지금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라고,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매질을 하곤 했다. (역시 하나마한 소리지만) 나는 내게 그리고 아이에게 너무 가혹했다. 나의 가혹함을 아이가 알리 없지. 아이는 작디작은 것들에게 온통 눈길이 쏠려 내 가혹함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은 내 시간 관념을 허무는 곳이었다. 나는 이렇게 바쁜데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우주 만화>(이탈로 칼비노)도 읽어야 하고 <나자>(앙드레 브르통)도 읽을 시간이 없는데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은 자주 내 시간을 압살했다. 아이가 여름선풍기 앞에 입 벌리고 앉아 아아아아, 거릴 때(송진권 <선풍기>) 나는 산본도서관에 있었다. 여름선풍기가 방 안에 말들을 토막 내고 깨뜨려 이상한 조합으로 흩어질 때 그 앞에서 아이는 자주 깔깔거렸다. 나는 어이없어하며 흩어진 말과 아이와 여름선풍기를 구경했다. 어떤 날은 아이가 방바닥을 뒹굴었고 책상 앞에 앉아 방바닥을 뒹굴며 부르는 아이의 노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요

티브이도 켜지 말고
게임도 하지 말고
무엇도 되지 말아요

나는 나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에요

어떤 생각도 내 속엔 없어요
이런 글도 쓰지 말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봐요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까
무엇도 되기 싫을 때니까

 - 송진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그리고 아이는 자주 혼자 노래를 불렀다. 내키는 대로 아무 노래나 불렀다. 시간이 뭉텅이로 쏟아지는데 "할 일이 있어야지"(송진권 <노래나 불렀지>) 노래가 떨어지면 누구한테 빌려 불렀고 그것마저 동나면 혼자 노래를 지어 불렀다. 지어 부른 노래마저 끝나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아이는 창 턱에 손을 괴고 무작정 골목을 바라보아야 했다. 아이를 등지고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아이가 두려웠고 동시에 부러웠다. (없는) 환영처럼 (사라진) 돌림노래처럼 어디선가 아이의 노래가 들려온다.

난 이 집이 좋아
이 집 화장실 구석에서
이렇게 혼자 노래나 부르고 있지

 - 송진권 <노래나 불렀지>


by 파란 | 2021/09/11 22:12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강보원 읽기1] 아얏
[강보원 읽기1] 아얏

모모와 나는 종종 희귀한
동물들을 보곤 했다.

깊은 밤 거제도 해변에서 쿵 하고 달리던 해달과 서울 덕수궁에서 엉덩이만 보였던 족제비 망원 시장에 묶여 있던 악어 같은 것, 그리고 다른 것들도 봤다. 먼 산과 가까운 강아지풀과 물웅덩이 위의 희고 파란 줄무늬의 족구공과 우리 집 처마 밑의 벌집 같은 것. 하루는 에프킬라를 뿌리고 벌집을 걷어 냈더니 다음 날부터 벌들의 잔당.... 생존자 벌들이 무척 화가 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쏘아 댔다. 벌에 쏘인 우유 장수(아얏!)와 산책하는 연인(아얏 아얏!)과 담장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아얏!)와 귤 따는 아이(으앙!)와 행인(아얏,)과 옆집 할아버지(아야아얏!)와 과일 장수(아얏!)와 가스 검침원(아얏 아얏)이 지나갔고.... 모모와 나의 얼굴은 퉁퉁 부어 희귀한 동물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가 똑같아. 나는 다시 한 번 에프킬라를 들고 벌들의 잔당을 소탕해 보려다 말았다(아얏!), 겨울이 오겠지 뭐. 대신 모모와 나는 집 앞 전봇대에 경고문을 한 장 뽑아 붙여 놓았다.

"벌 조심: 이 벌들은
집을 잃어서 무척 화가 나 있고
침은
아주
뾰족합니다."

 - 강보원 <동물들>

1
의미가 탈구된 혹은 벗어난 글의 최전선에 시가 위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떠오르는 이름들이 몇 있다. 신동문('풍선기' 연작), 김춘수, 박상순, 박정대, 김수영('오동나무 장롱' 연작), 이수명(초기시), 함기석(초기시), 김참, 서대경, 이준규, 유형진, 이제니, 송진권('못골' 연작).. 내가 읽은 1990년생 강보원(<완벽한 개업 축하 시>)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서 열거한 시인들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 <동물들>에서 '동물들'은 초라하다. 해달, 족제비, 악어 같은 것, 벌이 목록의 전부다. 시 <동물들>은 차라리 "생존자 벌들"의 사투기에 가까운데 "생존자 벌들이 무척 화가 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쏘아" 대는 바람에 우스꽝스럽게도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다양한 아얏, 소리를 내며 결집한다. 시인에 의하면 에프킬라로도 소탕되지 않는 "생존자 벌들"이 쏘아 대는 침 아래 단일대오를 이룬 인간들이 내놓은 해결책이란 게 전보대에 붙인 경고장이 다인데 그 내용이란 게

벌들이 집을 잃었다
집을 잃어 벌들이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침은 아주 뾰족하다,

가 전부다. 이런 게 시라면 아니 이런 게 시가 아니라면 <동물들>은 어떻게 시로 쓰여질 수 있게 된 걸까. 단 하나의 삽입어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가 똑같아."

어제와 오늘과 (어쩌면) 내일이 여전히 똑같아 똑같음에 파열음을 내기 위해 우리는 (삶이라는) 의미에 구멍을 낸다. 누군가는 아얏, 소리를 내고 다른 누군가는 아얏아얏, 거린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으앙, 거리기까지 한다. 쏘인 침은 동일한데 침이 피부를 뚫을 때 소리는 반-작용한다. 그것이 시다. 여전히 하루가 똑같은데 "이상한 열정"(<마지막으로 한 번 덜 하는>)에 들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그곳에서 시는 태어난다. "끝나지 않는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또 옆의 이야기를 가볍게 건드려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때 (시인이 언어-벌에 쏘여 내지르는) '아얏!'과 '아얏 아얏!'과 '아얏,'과 '으앙!'과 '아얏아얏!'과 '아얏 아얏'의 차이에 대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어느 틈에 나는 이렇게나 많은 과와, 따위들을 가지고 당신을 논다"(손음 <자귀꽃 저녁>)

2
그런데 강보원은 처마 밑 벌집에 왜 에프킬라를 뿌린 걸까? 나는 이 시인이 너무 사랑스럽다.    


by 파란 | 2021/06/04 12:35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희음 읽기9] 쓴다


[희음 읽기9] 쓴다

연필을 깎는 밤입니다.
연필을 깎다가 필연처럼 베인 손가락이 있고, 다른 밤
피 묻은 밤, 밤이 묻어버린 겨울이 있습니다.
밤과, 밤 아래의 계절에 나의 병든 손가락들이
묻히는 겁니다. 그런 날이라면 따뜻하겠지요. 지혈의 대낮은
아무와도 약속하지 않았다고 해도

(...)

달리던 것은 달려갑니다.
이미 죽은 나무는 거기서 더 죽게 되지도 않고 죽어서 다른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겨울은 겨울이고
손은 손을 모릅니다.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집어 들고 흐르는 물 쪽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나는 쓰기 시작합니다.

-희음  「국경일 오후」

메모> "그곳에서, 나는 쓰기 시작합니다." "종이가 찢기도록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고"1)) "구체적인 얼굴을 상상"2)하며 "최선을 다해"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흔적은 붉고 말이 없"습니다. "말들을 향해 인사 건네는"3) 내게 "대답 대신 뭔가가 내 안으로 쑥 들어."4)옵니다. "머잖아 나는 나에게조차 만져지지 않"5)을 텐데 내 안으로 쑥 들어온 이것은 무엇인가요. 잘 모르겠는데 "아름다워요."6) "그렇지요? 만져볼래요?" "그래도 돼요?" 손을 뻗자 당신의 "옆구리에서, 허벅지 속에서"7)"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허밍'이, '하울링'이 들려옵니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우리는 기다려도 되나요. 보이지 않는, 만져지지 않는 우리를, 우리가 찾아 돌아오도록"7) 비로소 "그곳에서 나는 쓰기 시작합니다."

1) 희음 「아프지 않게 조금씩 버려지는 코뼈」
2) 희음 「붉은」
3) 희음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
4) 희음 「죽음이 말하는 한 방식」
5) 희음 「아니다」
6) 희음 「인류 보편적 잡화상」
7) 희음 「Mass」
7) 희음 「우리는 반쯤 잠이 든 채로」

by 파란 | 2020/12/08 19:29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책읽기/책일기] 어긋나는 연인들
[책읽기/책일기] 어긋나는 연인들

해바라기 콤플렉스(2)

당신이 당신의 애인을 '세상'으로부터 건져낼수록, 당신의 애인은 당신이라는 '세상'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애인이 더불어 떨어지는 그 지경(地境)에서 마침내 거울 하나가 솟아오르면, 당신의 애인은 그 누구도 건져줄 수 없는 괴물이 되어있을 겝니다.

연정의 파라다이스는 6면이 거울로 뒤덮인, 꼭 당신의 마음만한 크기의 큐브입니다. 실은 그 속에 당신의 애인은 없지요. 그러나 당신이 고개를 돌리는 쪽마다 당신의 애인은 당신을 쳐다보며 방긋방긋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겝니다. 이미 '세상' 속으로 나가버린 당신의 애인은 해바라기처럼 생긴 정표(情表) 하나를 그 거울 위에 새겨놓았겠지요.

당신이라는 바로 그 사실 탓으로 거울방에 김이 서려도, 당신은 그곳을 연방 깨끗이 닦아 또 당신의 애인을 찾아냅니다. 당신이 순결할수록 사랑의 허상(虛像)이 오히려 번성하는 이치를 생각해 보았나요? 당신의 애인은 당신 속에, 당신의 거울방 속에, 당신의 '(해)바라기' 속에 있는 만큼, 늘 문제는 당신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의 실증화'입니다.

당신의애인의눈속에있는것은당신의애인을눈속에지닌당신의애인을보는당신뿐입니다. 내가 해바라기의 막(幕)을 투탈(透脫)하는 동무를 권면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요. '더불어 걷는 동무로서의 애인'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 신통한 내용이 없긴 하지만, 잠시 쉬는 참에 뒤라스(M, Duras)를 재인용해볼까요? "이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들이 던지는 교훈을 실감할 수 있는 시대다. 그 교훈에 따르면, 진하고 돈독한 인격적(성격)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한 쌍의 연인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주변의 세계를 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바깥으로 눈을 돌려 어떤 제3의 지점(두 사람이 함께 싸우고 함께 참여하는 대의)를 바라보는 데 있다."(지젝)

내가 연정을 일러 일종의 '원근법적 실패'라고 했듯이 결국 연애의 돌쩌귀는 두 연인 사이의 거리입니다. 물론 더 중요한 사실은 마주보는 사이에서는 그 거리조절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연정은 '질투'나 '헌신' 같은 무매개의 과욕을 피하기 어려운 열정이니, 제3자의 개입이 없는 자율적 거리조절은 실로 이상적일 뿐입니다. 가령, 신비주의나 존재의 형이상학이라는 무매개의 과욕이 흔히 빠지는 직접성의 환상은, 연정이 질투와 같은 나르시시즘적 격정에 의해 자가증폭하는 모습의 변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정에 빠지면서, 모두, 심은 적이 없는 해바라기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김영민, <동무론>, 2018, 최측의농간, 311-312쪽)

메모> '연애의 돌쩌귀'에 거리를 두면 어떻게 될까. 돌쩌귀는 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여닫이문이 흔들리지 않도록 암짝(문설주)에 수짝(문짝)을 걸어 내리꽂음으로 제 기능을 다 할텐데 돌쩌귀에 이격이라니. 물러난 돌쩌귀는 그저 쇠붙이에 불과하고 작은 바람에도 여닫이문은 쓰러질 텐데 이격이라니. 연인들은 소실점을 모른다. 그들의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와 항상 등가 상태에 있고 세상은 삼차원이고 관계는 이차원인데 연애감정은 단박에 그들을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린다. 아이들은 원근을 모른다. 연인들에게 '질투'와 '헌신'은 동근원적이다. '무매개적 과욕' 탓에 그들은 쉽게 질투하고 쉽게 헌신한다. 김영민은 제3자의 개입을 말한다. 그는 (연애의) 돌쩌귀를 새롭게 발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해바라기의 막(幕)을 투탈(透脫)하는 동무" 혹은 "더불어 걷는 동무로서의 애인" 같은. '거울방'에 김이 가득한데 그는 제3자의 개입에 대해 말을 아낀다.
by 파란 | 2020/12/07 11:56 | 책읽기/책일기 | 트랙백 | 덧글(0)
[임승유 읽기4] 변명
[임승유 읽기4] 변명

왜 자꾸 쳐다보니

벌써 몇 명은 알아챈 것이다. 뒤를 볼 것이다.

애들은 한 번도 날 안 보는 적이 없었어. 내가 안 본다면 모를까. 하지만 나는 나만 보고 있을 수 없는걸. 나만 보고 있으면 나를 어쩌지 못해 손톱이 잘려 나가는걸. 잘려 나간 손톱을 찾기 위해 책상 속도 뒤지고 사물함도 열어 보고. 너희 필통도 열어 보다가

뭐 하니

나갔다 온 네가 물어보면 응, 누가 자꾸 날 불러

그러면 너는 뒤도 안 보고 가버리는 것이다. 누가 나를 안 불렀으면 좋겠다. 불렀다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임승유 변명

메모> 변명은 누군가에게 날 변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 행위이다. 정작 변명을 위해 뒤를 돌아보면 너는 없다. 아니, 있었는데 너는 뒤도 안 보고 가버렸다. 나는 변명을 왜 하려는 걸까. 누군가 자꾸 날 보는데 인기척에 뒤돌아보면 너는 없다. "내가 안 본다면 모를까" "애들은 한 번도 날 안 보는 적이 없었어." 내가 그것을 아는 건 뭐 하니, 라고 나갔다 온 네가 자꾸 묻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는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뒤돌아보는 걸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목소리 때문에 뒤돌아본다. "누가 자꾸 날 불러" 내가 뒤돌아보면 너는 말한다. "왜 자꾸 쳐다보니" 내가 뒤돌아 볼 것을 "벌써 몇 명은 알아챈 것이다" 애들은 나를 항상 보고 있다. "내가 안 본다면 모를까" 뒤돌아보면 너는 없고 없지만 목소리로 있고 나는 "나만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러는 "나를 어쩌지 못해" 손톱을 깨문다. 손톱이 잘려 나가고 나는 "잘려 나간 손톱을 찾기 위해 책상 속도 뒤지고 사물함도 열어 보고" 네 "필통도 열어" 본다. "나갔다 온 네가" 내게 묻는다. "뭐 하니" 나는 뭐 하는 걸까. 뒤돌아보기와 손톱 물어뜯기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나를 "벌써 몇 명은 알아챈 것" 같다. 제발 "누가 나를 안 불렀으면 좋겠다. 불렀다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너의 말) "왜 자꾸 쳐다보니" (나의 말) 너는 없는데. (너의 말) "뭐 하니" (나의 말) "잘려 나간 손톱"이 보이지 않아. 

변명 대신 나는 결국 시집을 덮어야 했다.
by 파란 | 2020/11/18 19:32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희음 읽기8] 시적 분화-읽기의 즐거움
[희음 읽기8] 시적 분화-읽기의 즐거움


1
(시집 2부가 시작됐다.) 이상하지.  「아프지 않게 조금씩 버려지는 코뼈」를 읽으면 글을 쓰고 싶고  「우리는 키스한다」를 읽으면 키스하고 싶고  「서 있는 사람」을 읽으면 (어디가 됐든) 악다구니를 써대며 대기표를 뽑고 싶고  「앉아 있는 사람」을 읽으면 소파에 얼굴을 묻고 싶고  「배낭이 된 남자」를 읽으면 무한정 내 배낭에 책을 욱여넣고 싶고  「미아」를 읽으면 요의가 느껴지고. (...) 이 목록에 끝이 있을까. 끝은 “어디에 있어도, 어디에 숨어도 계속 찾아오는 거”( 「도로 끝, 그리고」)란 걸 우리는 안다. 이 목록에 끝은 없다. 그럼 “끝이 안 난다는 거네?” 글을 쓰거나 키스를 나누고, 악다구니를 부리면서 소파에 얼굴을 묻고, 배낭에 책을 욱여넣은 끝에 요의를 느끼는 이를테면 이런 일련의 몸짓들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알겠다. 하나는 다시 둘로 이어지고 넷으로 분화한 뒤 여덟에 이르러 수적 분열을 일으킨다. 시 안에서 이것들은 모두 가능하고 가능한 한 새벽이 오기 전 이것들을 모두 해볼 생각이다. 그저 나는 활자를 따라 읽을 뿐인데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

2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기에는 서로서로 맞물린 채 공존하는 두 운동이 있다는 사실이다.”(들뢰즈•가타리,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카프카론」, 1992, 문학과지성사, 114쪽) 쓰는 자와 읽는 자.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키기. 눈으로 손가락을 읽기. 손가락-눈. 눈-손가락. “운동의 두 가지 상태, 욕망의 두 가지 상태, (...) 두 가지 상태의 공존이 어떤 망설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선험적인 기준에 의지하지 않은 채 내재적 체험을 통해 욕망의 다의적 요소들을 더듬는 진지한 태도인 것이다.”(들뢰즈•가타리, 앞의 책, 115-116쪽)


by 파란 | 2020/11/15 08:48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희음 읽기7] 길, 복도, 말, 터널,
[희음 읽기7] 길, 복도, 말, 터널,

터널, 이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당장 생각나지 않아도 언젠가 생각나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고 구를 듯이 웃었다

언덕에 올랐다 보이지 않는 마을을 바라다보았다 바라다보아도 보이지 않던 마을을, 바라다만 보다가 바라보던 쪽으로 나는 걸어갔다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든 나온다

차가운 단어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 태웠다 그 재를 섞어 마시면 잊을 수 있다고 했다

살을 발라내지도 않고 삼킨 것들이 내겐 이미 많았지만

터널, 이라는 말이 생각나 복도를 따라 달렸다

그곳에는 죽은 나무들과 살아 있는 나무들이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비상구 불빛을 막고 서 있는 건 달리는 사람이었다

달리는 사람은 막고 선 채로, 달리는 내게서 자꾸 멀어졌다

 - 희음 삼킨 것들

메모> 정말 그럴까요.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든 나온다는 당신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그 말을 떠올리며 달렸는데 복도 같은 곳이 나오고 터널, 하고 말을 내뱉자 돌연 내 몸이 갇혔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당장 생각나지 않아도 언젠가 생각하면 괜찮은 거라고 그랬는데 터널이란 말을 떠올리지 말아야 했을까요. 복도 끝에 비상구 불빛을 막고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입니다. 내가 다가갈수록 그는 멀어집니다. "달리는 사람은 막고 선 채로, 달리는 내게서 자꾸 멀어졌다" 자꾸만 멀어지는 사람을 따라 나를 가둔 터널도 무한정 길어지고 복도를 따라 달릴수록 내 입 안 터널, 이라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돌아보니 터널 안에 살을 발라내지도 않고 삼킨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이곳은 너무 캄캄해. 웨이터, 웨이터, 목소리는 빛처럼 칠흑을 따라 번져 가는데, 웨이터는 없고, 목소리로만, 우리는 기다리고, 웨이터, 웨이터, 조금만 더 우리는 기다려도 되나요. 보이지 않는, 만져지지 않는 우리를, 우리가 찾아 돌아오도록, 웨이터, 웨이터, 부르면서 우리는, 웨이터, 웨이터, 다른 것이 될지도, 더 좋은 다른 것이, 될지도 모르죠."(희음,「Mass」 부분)

by 파란 | 2020/11/15 06:44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양안다 읽기1] 시, 꿈, 발작, 윤리
[양안다 읽기1] 시, 꿈, 발작, 윤리

1
삶은 살아갈수록 양파 껍질 같아서 까도 까도 드러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알멩이가 두려워 우리는 산다는 일을 포장하거나 숨긴다. 비로소 잠에 이를 때 포장을 풀고 자신을 드러내는데 잠 속에서 "유년"(「우리들은 프리즘 속에서 갈라지며(하)」)은 시작된다. "다시 유년으로 돌아간다면/ 슬플 때마다 슬프다고 말해야지/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꿈을 깨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속이는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그 세계 속 사람들은 왕왕 말한다. "눈 한번 딱 감고 모른 척하라고/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않겠냐고"

2
나는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발작"한다. 발작 증세는 다음과 같은데 "불면에 매료"되거나 "끼니를 거르고 창고에 쌓인 병들을 함께 비우"거나 때로 "노래"한다. 그럴때면 "우리는 각각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안다. 나는 "지금 경계선에 있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내 손엔 이미 "알약"이 쥐어져 있는 걸. 
그런 나더러 친구들은 말한다. "네가 나빠. 다들 잘 감추며 사는데. 발작하는 네가 나쁜 거야." 내 눈은 자꾸 "옥상 아래"로 향한다. "친구의 말에 나는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몇 마리의 병아리가 절뚝거리고 있었다 땀에 젖은 체육복을 입고 나는 덜덜 떨었다"

3
시는 무엇인가요. "들어 봐/ 이것은 너를 괴롭히는 꿈의 윤리야"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꿈" 속에서 (이것은 반복인데) "우리는 각자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by 파란 | 2020/06/07 09:27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영광 읽기4]
[이영광 읽기4] 오늘

그립고 무섭던 어제는 사라져버리는 법이 없었다
그립고 캄캄한 내일이 엄습하지 않는 날도 없었다

핫이불 한 채에 온 식구가 몸을 묻은 오늘의 밤에
결코 죽지 않는 어제와 내일이 비집고 들어와
미어터지던,

오늘을 다 눌러 죽이고 나서야
지쳐 잠들던

 - 이영광 <단칸>

[메모] 어제는 무섭고 내일은 캄캄하다. 아무리 무서워도 어제는 복기되고 복기되어야 하고 아무리 캄캄해도 밀린 공과금처럼 내일은 온다.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무섭던 어제가 지나고 캄캄한 내일이었는데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시인은 오늘을 말하지 않는다. 오늘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가 무서운 것이라면 오늘은 무섭지 않다. 닥치면 무서움은 저만치 물러선다. 내일 역시 마찬가지인데 캄캄한 것이 내일이라면 오늘은 뚜렷하다. 오늘을 시로 풀어낼 순 없을 것이다. 겨우 어제를 회고하고 근사치에 기대 내일을 전망할 뿐 시는 오늘을 모른다. 어제와 내일이 비집고 들어와 오늘이 미어터진다. (오늘이란) 단칸방이 미어터진다. 미어터지려면 그러므로 오늘은 철저하게 단칸방이어야 한다. 오늘은 여분을 모른다. 무서움을 모르고 캄캄함을 모른다. 시가 다다를 수 없는 오늘을 깨닫게 해주는 단칸방은 얼마나 고마운 것이냐. 핫이불 한 채에 어제와 내일이 몸을 묻고 오늘을 견딘다.




by 파란 | 2020/05/19 06:41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8] '푸른 사과'(이수명)
[이수명 읽기8] '푸른 사과'(이수명)

사과를 던지자 최초의 벽이 생긴다. 사과는 벽에 맞아 떨어진다. 벽에 맞는 순간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조각들로 흩어졌다가 사과는 다시 뭉친다.

사과를 던지자 벽이 뚫린다.

푸른 사과들이 도로 양변에 늘어서 있다. 그중 하나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머리 위로 내가 던진 사과가 날아간다.

 - 이수명 「푸른 사과」

1
시는 본래 그 자리에 있고, 있지만 서점 매대에 누워 있거나 또는 물류창고에 쌓여 있을 뿐이고, 내가 구입하거나 주문해 읽을 때 비로소 시는 생긴다. 시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내가 집어든 '푸른 사과'(이수명)는 특별하다. 만원에 여섯 개씩하는 이수사계시장 사과와 다르다. 같은 사과인데 '푸른 사과'는 모양이 다르고 냄새가 없다. 무형무취無形無臭하지만 그래도 사과는 '사과'다. '푸른 사과'가 내 마음을 쪼갠다. 내 마음 역시 '푸른 사과'를 쪼갠다. 행과 연으로 흩어졌던 '푸른 사과'가 내 눈을 통과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흩어졌던 '푸른 사과'가 다시 시의 몸을 입는다.

2
이번엔 시를 던지기로 하자. 시를 던지자 대상이 뚫린다.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 낙장落張. 그중 하나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머리 위로 내가 던진 사과가 날아간다. 사과는 '푸른 사과'다.

3
시를 읽을 때 나는 벽 앞에 선 기분이 든다. 알고 있던 언어였는데 당혹스럽다. 어떻게 해야 벽이 뚫릴까. 벽 너머에 '푸른 사과'가 있다. 나는 아직 이편에 있고.
by 파란 | 2020/05/10 21:15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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