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주에서 실비아를 찾아 헤맸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녀를 찾아,,,

by 파란
[이영광 읽기4]
[이영광 읽기4] 오늘

그립고 무섭던 어제는 사라져버리는 법이 없었다
그립고 캄캄한 내일이 엄습하지 않는 날도 없었다

핫이불 한 채에 온 식구가 몸을 묻은 오늘의 밤에
결코 죽지 않는 어제와 내일이 비집고 들어와
미어터지던,

오늘을 다 눌러 죽이고 나서야
지쳐 잠들던

 - 이영광 <단칸>

[메모] 어제는 무섭고 내일은 캄캄하다. 아무리 무서워도 어제는 복기되고 복기되어야 하고 아무리 캄캄해도 밀린 공과금처럼 내일은 온다.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무섭던 어제가 지나고 캄캄한 내일이었는데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시인은 오늘을 말하지 않는다. 오늘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가 무서운 것이라면 오늘은 무섭지 않다. 닥치면 무서움은 저만치 물러선다. 내일 역시 마찬가지인데 캄캄한 것이 내일이라면 오늘은 뚜렷하다. 오늘을 시로 풀어낼 순 없을 것이다. 겨우 어제를 회고하고 근사치에 기대 내일을 전망할 뿐 시는 오늘을 모른다. 어제와 내일이 비집고 들어와 오늘이 미어터진다. (오늘이란) 단칸방이 미어터진다. 미어터지려면 그러므로 오늘은 철저하게 단칸방이어야 한다. 오늘은 여분을 모른다. 무서움을 모르고 캄캄함을 모른다. 시가 다다를 수 없는 오늘을 깨닫게 해주는 단칸방은 얼마나 고마운 것이냐. 핫이불 한 채에 어제와 내일이 몸을 묻고 오늘을 견딘다.




by 파란 | 2020/05/19 06:41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8] '푸른 사과'(이수명)
[이수명 읽기8] '푸른 사과'(이수명)

사과를 던지자 최초의 벽이 생긴다. 사과는 벽에 맞아 떨어진다. 벽에 맞는 순간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조각들로 흩어졌다가 사과는 다시 뭉친다.

사과를 던지자 벽이 뚫린다.

푸른 사과들이 도로 양변에 늘어서 있다. 그중 하나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머리 위로 내가 던진 사과가 날아간다.

 - 이수명 「푸른 사과」

1
시는 본래 그 자리에 있고, 있지만 서점 매대에 누워 있거나 또는 물류창고에 쌓여 있을 뿐이고, 내가 구입하거나 주문해 읽을 때 비로소 시는 생긴다. 시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내가 집어든 '푸른 사과'(이수명)는 특별하다. 만원에 여섯 개씩하는 이수사계시장 사과와 다르다. 같은 사과인데 '푸른 사과'는 모양이 다르고 냄새가 없다. 무형무취無形無臭하지만 그래도 사과는 '사과'다. '푸른 사과'가 내 마음을 쪼갠다. 내 마음 역시 '푸른 사과'를 쪼갠다. 행과 연으로 흩어졌던 '푸른 사과'가 내 눈을 통과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흩어졌던 '푸른 사과'가 다시 시의 몸을 입는다.

2
이번엔 시를 던지기로 하자. 시를 던지자 대상이 뚫린다.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 낙장落張. 그중 하나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머리 위로 내가 던진 사과가 날아간다. 사과는 '푸른 사과'다.

3
시를 읽을 때 나는 벽 앞에 선 기분이 든다. 알고 있던 언어였는데 당혹스럽다. 어떻게 해야 벽이 뚫릴까. 벽 너머에 '푸른 사과'가 있다. 나는 아직 이편에 있고.
by 파란 | 2020/05/10 21:15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7] 몽상과 착란
[이수명 읽기7] 

커다란 케익을 놓고
우리 모두 빙 둘러앉았다
누군가 폭탄으로 된 초를 꽂았다.
케익이 폭발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뿌연 먼지 기둥으로 피어오르는 폭발물을
잘라서 먹었다

 - 이수명 「케익」

1
커다란 케익을 놓고/ 우리 모두 빙 둘러앉았다/ 누군가 폭탄으로 된 초를 꽂았다./ 케익이 폭발했다." '몽상과 착란'(게오르크 트라클)의 시간. "나는 들어간다 누군가의 꿈속으로. 그 속엔 황톳물이 흘러가고 말리지 못한 꽃들이 떠다니고 내 노래들이 휩쓸린다"(「누군가」) '꿈'이 '몽상'이라면 흘러가는 황톳물, 떠다니는 꽃, 휩쓸리는 노래들은 '착란' 아닌가. 그렇다. 몽상에 머무는 한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케익이 폭발한다. 물론 그것은 몽상이다.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착란이다. 몽상과 착란. 나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 

2
우리 같이 아름다운 노래 불러요.

3
"그리고/ 뿌연 먼지 기둥으로 피어오르는 폭발물을/ 잘라서 먹었다" 
by 파란 | 2020/05/10 02:08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6] 이수명 리부트
[이수명 읽기6] 이수명 리부트

1
이수명을 오랫동안 읽었다. 순차적 읽기. 그렇지 않나. 어떤 시집을 읽고 좋으면 무작정 다음 시집을 기다리는 패턴, 대체로 시집읽기는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작년 가을부터 이수명을 다시 읽고 있다. 시집읽기는 두 종류가 있다. (쓰기는 잘 모르겠다.) 따라읽기와 다시읽기. 따라읽기는 연대기순으로 진행된다. 반면 다시읽기는 어떤 계기가 뒤따른다. 어떤 계기 없이 다시읽기는 불가능하다.

2
2018년 초여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물류창고』(2018)가 보인다. 1부에 실린 같은 제목의 「물류창고」 연작 10편은 정교했다. 창고에 들어가 내가 본 것을 당신에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보인 로직에 나는 매료됐다. 그것이 첫번째 계기인데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를 ‘발견’한 결정적 계기는 시가 아닌 평문이었다. 2018년 여름, 「물류창고」 연작을 만나기 전 이미 두 번의 계기가 내게 있었다. 

2015년 『쓺』 창간호가 보인다. 그곳에 수록된 평문, <내가 그녀임을 알았을 때 김구용의 「구곡」>을 읽으면서 평론가-이수명의 잠재성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김구용으로 들어가는 문을 이수명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상이 보인다. ‘이상의 <오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란 부제가 딸린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2013)가 주인공인데 이상문학회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평론가-이수명도 글을 보탰다. 김인환과 황현산이 공동으로 첫머리 글을 쓰고 평론가 15명이 오감도 연작 전편에 해석을 붙인 프로젝트였다. 오감도 제10호에 글을 붙인 이수명의 평문 「세계는 나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서늘하면서 뜨거웠다.  평문은 명징했고 형식적으로 스타일리쉬했다. 내가 지금 이 글 앞에 있다, 란 자의식을 가지고 읽게 된 이수명의 첫글이었다. 시인이든 평론가든 누가 됐든 그런 종류의 글 하나씩은 꼭 있지 않나.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에 실린 이수명의 글이 내겐 그랬다.

3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1998)를 헌책방에서 산 건 서른 중반 쯤인데 구입해두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습니다. 이제 읽을 때가 된 것 같아요. 따라읽기 했던 이수명을 다시읽기 하기까지 그러니까 구입하고 밀쳐둔 그의 두번째 시집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가 제 자리를 찾기까지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돌아야 했던 걸까요. 그건 시집의 운명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독자의 운명이기도 할거예요. 그런데 어떡하나, 첫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1995)가 보이지 않네요
.
by 파란 | 2020/05/09 14:40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5] 시와 함께
[이수명 읽기5] 시와 함께

그가 걸어가고 있는데 낡은 집의 창문이 열리더니 한떼의 새들이 쏟아져 나왔다. 새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그의 발목을 쪼아댔다. 발목이 사라지자 그는 없는 다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새들은 그를 쫓으며 그의 팔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맞은편 창문이 열리자 그를 끌고 우르르 그 안으로 사라졌다.

- 이수명 <새와 함께>

1
시집(<붉은 담장의 커브>)이 열리더니 한떼의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들은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 내 발목을 쪼아댔다. 발목이 사라지자 난 없는 다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시들은 나를 쫓으며 내 팔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맞은편 시집(<직선 위에서 떨다>)이 열리자 나를 끌고 우르르 그 안으로 사라졌다. 

2
낯선 시집을 열면 으레 그렇듯 생경한 시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들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포박하고 시집이 닫힐 때까지 나는 의사수인擬似囚人이 된다. 형기는 시집마다 다른데 영어囹圄의 몸이 된 나는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옥 바깥을 바라보는 게 활동의 전부다. 간수(시인)는 보이지 않고 시들은 매일 매일 나를 쪼아댄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형량을 헤아리지만 형기는 줄어들지 않고 매 끼니마다 새로운 시들이 눈을 습격하고 마음을 꿰뚫는다. 나는 도망가려고 발버둥친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시집의 하얀 색 표지가 전부다. 검은 색 글씨가 선명하다. 붉/은 담/장/의 커/브. 저 담장을 나는 넘을 수 있을까. 붉은 담장을 넘으면 커브가 나올텐데 나는 커브를 돌 수 있을까. 오늘 배식은 <새와 함께>이다. 시와 함께 나는 감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3
일흔 편의 시를 다 읽으니 옥문이 열리더라.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기둥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이수명 <침입자>) 물론 그는 이영광이다. 감옥(<붉은 색 담장의 커브>)을 벗어났는데 다시 감옥(<직선 위에서 떨다>)이다. 선명하게 하얀 색 표지가 보인다. 아직은 문 밖이다. 희미하게 문지기(이영광)가 보인다.

4
"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이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그에게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게 되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돼오.> 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물러섰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고 몸을 굽힌다."(<법 앞에서>, <집으로 가는 길>, 1984, 민음사, 49쪽)

5
나는 자발적 수인囚人이다. 詩여, 나를 포박해다오!
by 파란 | 2020/05/08 23:27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이수명 읽기4] 시적 순간
[이수명 읽기4] 시적 순간

복도 끝에 너는 서 있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나는 허리를 구부렸다.

그때 피어난 바닥의 꽃을 향해
그때 숨어든 꽃의 그림자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구부러진 채
나는 펴지지 않았다.

복도를 떠돌던
나의 빛은 구부러진 채
나의 나날들은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다.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그때 흔들린 꽃에 대해
그때 사라진 꽃의 그림자에 대해

나는 말하지 않았다.
너에게 가려고
가지 않으려고

구부러진 채

 - 이수명 <나를 구부렸다>

메모> 너에게 가기 위해 가지 않아야 한다. 너에게 가지 않기 위해 나는 허리를 구부린다. 하기 위해 하지 않고 하지 않기 위해 몸을 구부린다. 몸을 구부리기. 그것은 하기의 극대화이고 최대치다. 허리를 굽히니 보인다. 저만치 복도 끝에 서 있는 너가 보인다. 바닥에 피어난 꽃이 보인다. 꽃은 숨은 꽃이고 존재방식은 그림자인데 너에게 다가가면 너는 모습을 감춘다. 나는 너에게 가기 위해 가지 않고 가지 않기 위해 허리를 구부린다. 바라봄은 빛이다. 시선도 구부러진다. 너를 보려고 너를 보지 않고 너를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구부린다. "그렇게 나의 나날들은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다." 보는 눈은 만지는 손이 되고 너를 향해 손을 내밀자 너는 사라진다. 너는 본래 실체(꽃)였는데 너를 보려고 보지 않은 탓에 너는 비실체(그림자)가 되었다. "사라진 꽃의 그림자"를 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비로소 나는 안도한다. 나는 너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너에게 닿기 위해 나는 너에게 닿지 않아야 하는데 허리를 구부리고 시선을 구부리자 사라짐의 방식으로 너는 스스로 존재증명을 한다. 은현隱顯. 여전히 너는 복도 끝에 서 있고 나는 구부러진 채 어떤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by 파란 | 2020/05/08 00:47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0)
[김영민 읽기1] K
[김영민 읽기1] K

"나는 긴 세월 글을 통해서, 글쓰기로써, 그리고 글과 함께 공부길을 걸어왔습니다. 하루 몇 시간은 변함없이 책을 읽고 몇 시간은 역시 변함없이 글을 쓰는 중에 어느새 상유桑楡에 노을의 붉은 빛이 짙어가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글쓰기는 내 정신의 거처였고, 내 일상의 노동이었으며, 내 성숙의 묘판苗板이었고, 내 초월의 실험장이었습니다. 실로 긴 세월 글쓰기 없는 내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지요. 마치 그 발톱으로 짐승을 알아채듯이 어느새 독자들은 글로써 나를 알아내게 되었고, 더불어 갖은 평판에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필자로서 얻을 수 있는 무상의 상찬이 그야말로 원 없이 베풀어지기도 했습니다. 말글처럼 정교한 매체가 없기에 글쓰기도 그 필자의 정신세계를 비교적 적확하게 드러내는데, 내가 글쓰기의 수행遂行, 修行을 거치면서 얻게 된 사연은 역시 결국은 내 정신세계의 내력을 알리고 우리 시대의 주류와 버성겨온 지표일 것입니다.
나는 글과 함께 성장했고, 글로써 입신했으며, 글로써 내 길을 찾아왔고, 마침내 공부길의 긴 도정에서 글쓰기를 넘어서는 자리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쓰지 않으면 죽겠는지'를 말하던 릴케를 지나고 '어떤 상황에서나 처음이자 마지막 수단으로 글에 의존하곤 했'던 트로츠키를 경유했으며, '입을 벌리면 글詩이 콸콸 쏟아진다'는 어떤 아이를 통과해서 이윽고, 글들이 무너지고 부서져서 생활의 하아얀 점 속으로 사라지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최초의 글쓰기에 대한 기억은 시詩-쓰기였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공자께서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조차 하지 못한다不學詩無以言'는 자리의 한 끄트머리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과 변화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기운은 내 공부의 미래를 암시하는 묘맥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김영민, <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2020, 글항아리, 15-16쪽)

메모> 내가 처음 산 김영민의 책은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1996)였다. <RIVIEW>라든가 <당대비평>을 비슷한 시기에 구입해 읽은 기억이 난다. 스물 후반 무렵인데 내가 김영민의 존재와 그가 쓴 책 <탈식민성과 우리 인민학의 글쓰기>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책이 나온 그 해 5월 지금 몸담고 있는 일터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가 써내려간 책들을 읽으며 이십대를 보냈고 서른을 맞았으며 다시 마흔을 보내고 급기야 오십을 그와 함께 넘겼다. 김영민 공부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몇차례 시도했던 적이 있다. 직전에 살았던 삼풍파크 시절인데 너무 부끄러워 포기해야 했다. 2006-2007년 사이로 기억한다. 학문공동체 장미와주판에 그가 올린 글을 슬금슬금 엿보며 한시절을 보냈던 기억, 그리고  장미와주판이 2009년 무렵 끝났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그를 잊고 지냈던 시절이 있다. 장미와주판 이후 시기로 기억한다. 다시 내 마음에 불을 지핀 건 <봄날은 간다>(2012)였다. 봄빛을 닮은 표지가 예뻐 가만히 가만히 쓰다듬었던 기억, 그 이후 그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2020)은 내가 여전히 그에게 붙들려 있음을 증명한다. 

그랬던 그가

"나는 긴 세월 글을 통해서, 글쓰기로써, 그리고 글과 함께 공부길을 걸어왔습니다. 하루 몇 시간은 변함없이 책을 읽고 몇 시간은 역시 변함없이 글을 쓰는 중에 어느새 상유桑楡에 노을의 붉은 빛이 짙어가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라고 고백한다. 상유桑楡라니..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청년이었다. 상유에 든 노을의 붉은 빛은 청년의 것이 아니다. 김영민의 육신이 늙어간다는 걸 그의 육성으로 확인한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서문을 덮고 나는 조금 울었다. "무너지고 부서져서 생활의 하아얀 점 속으로 사라지는 이야기"를 가능하다면 지연시키고 싶다. 
by 파란 | 2020/04/29 00:52 | 책읽기/책일기 | 트랙백 | 덧글(2)
[함기석 읽기1] 환상동화
[함기석 읽기1] 환상동화

#1
(사냥꾼 등장) “더럽고 비열한 놈들”(「사냥놀이」)이 사냥놀이를 한다. 표적을 그리고 “큰소리로 읽는다”(「국어선생은 달팽이」, 이하 「달팽이」) “당나귀 도마뱀 염소, 자 모두 따라해!” “소년이 손을 든 채 묻는다/ 염소를 선생이라 부르면 왜 안되는 거예요?” 이건, 사냥놀이니까, “소년의 손바닥을 때리며” 사냥꾼이 대답한다.

#2
(사냥꾼 사라지고 국어선생 등장) “당나귀 도마뱀 염소, 자 모두 따라해!” “선생이 정신없이 칠판에 쓰며 중얼거리는 사이” “뒷문을 통해 몰래 교실로 들어간”(「달팽이」) 염소가 “아이들을 끌고 운동장으로 도망친다/ 아이들이 일렬로 염소꼬리를 잡고 행진”한다. 염소를 따라 아이들이 목청을 높인다.

“국어선생은 당나귀
국어선생은 도마뱀
(...)
국어선생은 칠면조
국어선생은 사마귀
(...)
국어선생은 주전자
국어선생은 철봉대
(...)
국어선생은 달팽이
국어선생은 달팽이"

이런 아이러니라니. 국어선생은 자신이 외친대로, 된다. 국어선생은 동물들이 된다. 당나귀가 되었다가 도마뱀이 되었다가 칠면조, 사마귀가 되었다가 주전자, 철봉대가 된다. 그는 감히 염소는 되지 못한다.1) “선생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소리친다/ 당장 교실로 들어오지 못해? 이 망할 놈들!” 아이들이 낄낄대며 운동장을 달린다. 염소가 “손목시계를 풀어 하늘 높이 던”지자 아이들 역시 “일제히 시계를 벗어 공중으로 집어던진다” 마법의 시간이 펼쳐진다. “오전 10시는 오후 4시가” 되고 “아이들은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선생이 씩씩거리며 운동장으로 뛰쳐나온다/ 그 사이, 운동장은 하늘이 되고/ 시계는 새가 된다/ 바람은 의자가 되고/ 나무들은 자동차가 된다” 허공에 메아리가 들린다.

"국어선생은 달팽이!
국어선생은 달팽이!"

“하늘엔 수십 개 의자가 떠다니고/ 구름 위로 채칵채칵 새들이 날아오른다/ 구름은 아이들 눈 속으로도 흐르고/ 바람은 힘껏/ 국어책과 선생을 하늘꼭대기로 날려보낸다”

#3
(다시 사냥꾼 등장) "예리한 총성이었다/ 피를 토하며 염소가 즉사했다/ 풀밭은 한 장의 거대한 백색 손수건/ 시뻘겋게 물들어가고 있었다"(「사냥놀이」) 소년이 운다. 추악한 사냥꾼 같으니라고! 사냥꾼이 "염소고기를 씹으며 소년에게 말"한다. "임마! 그만 잊어버려, 별일 아니잖아" 그러니까 옛날 옛적에 “살해된 자는 있으나 살해한 자는 없는/ 추악한 어른들의 세계가 있었다" 어른들은 그곳에서 더럽고 비열했다. 소년이 회상에 잠긴다. "함께 풀밭에 누워/ 구구단을 외던 염소"를, "꼭 한번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며/ 비행기처럼 웃던/ 멸치처럼 웃던 염소"를 소년이 회상한다. "그 착하고 어린 염소가 살해되었다" "추악한 어른들의 세계" 건너편에서 도덕책을 불태우는 소년들이 보인다.("밤마다 눈 내리는 놀이터에 앉아 한 장씩 한 장씩/ 도덕책을 불태우”는 소년이 있다")

#4
(소년의 환상) "염소가 죽었다/ 소년은 염소의 시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대문 옆 칠면조도 살구나무도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살구나무를 업고 주전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아름다운 풀밭이 있었다/ 소년은 풀밭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달이 소년의 허리까지 내려와 웃어주었다/ 새들이 살구나무로 날아와 노래를 불러주었다/ 풀밭 끝에서 염소가 걸어왔다/ 소년을 무릎에 눕히고는 트럼펫을 불어주었다/ 빗자루에 관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욕쟁이 빗자루 시집 못 간 빗자루/ 소년이 웃었다/ 살구나무가 웃었다"(「달팽이」)

#5
(시인의 고백) 함기석은 염소다. 그는 염소가 된다. “지붕 위에 앉아 바이올린을 켜는 염소 어두운 다락방에서 울고 있는 나를 위해 바이올린을 켜는 염소 내 시는 그 어린 염소가 쓴다"(「지붕 위 염소」) 세계란 사냥꾼/국어선생에 맞서 어린 염소가 시를 쓴다. 알겠다. 시인에게 '어린 염소'는 은유인데 이를테면 그것은 시적 장소였던 셈.

"우울한 날이면 나를 데리고 빠알간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 하모니카를 불어주던 염소 저녁이면 굶주린 나를 자전거에 태워 언덕을 달리다 하늘을 달리다 입으로 물고기를 게워 나에게 먹여주던, 밤마다 별과 달을 훔쳐와 아파하는 내 누이의 눈 속에 넣어주던 염소 내 시는 그 착한 염소가 쓴다 염소가 달리는 언덕이 쓰고 언덕 위 버려진 무덤들이 쓴다" 

어린 염소에 이끌려 하얀 원고지 안으로 들어간 시인이 그곳에서 소년이 되고 염소가 주는 물고기를 먹고 꿈을 꾼다. 꿈의 기록들. 소년의 "등 뒤에서 자꾸만 염소의 웃음소리가 들"(「사냥놀이」)린다. 차라리 시집 1부와 2부는 시인의 꿈노트처럼 보인다. 함기석의 첫 번째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는 그렇게 쓰여졌다.  


1) 함기석 시에서 '염소'는 천사다. 「그런 밤이 있습니다」에서 염소는 '천사'가 된다. 국어선생은 달팽이에 수많은 염소가 나오는데 「그런 밤이 있습니다」에서 염소는 살인자 반대편에 놓인다. 

by 파란 | 2020/04/24 20:53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1)
[이영광 읽기2] 의문의 일패
[이영광 읽기2] 의문의 일패

이영광은 자꾸 패한다. 일로도 패하고( 「실수-시 창작 교실1」) 돈으로도 패하고( 「편의점」) 시로도 패한다.(「하산」) 시로도 패하는데 말이라고 다를까. 그는 말로도 패한다.(「생은 장난」) 패한 끝에 몸에게도 패한다.(「더 무력한 것」, 「살」) '일'과 '돈'과 '시'와 '말'과 '몸'이 경쟁하듯 다툰다, 누가 누가 더 잘 패하나요, 다투면서 그렇게 그는 자꾸 패한다. 쓰면서 패하고 패하면서 쓴다. 그 둘은 쌍아雙芽 같아서 어느 쪽을 앞세워도 결국 똑같다. 언젠가 그가 썼듯 "詩는 늦은 것"(詩는」, 『그늘과 사귀다』)이고 시인은 "하객들 두루 도착한 후에/ 문닫고 조용히 들어와/ 뒷전에 앉은 사람"인지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by 파란 | 2020/04/10 22:33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1)
[이근일 읽기26] 시란 '파리지옥'(이근일)
[이근일 읽기26] 시란 '파리지옥'(이근일)

식물의 그림자에 감정이 묻어났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알 수 없는 그날의 상황이,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사람들 앞에서 내가 왜 그런 모욕을 당해야만 했는지, 도대체 너는 얼마나 오랫동안 나에 대한 증오를 키워온 것인지, 혹 언젠가 내가 무심코 던진 그 말 때문이었을까. 내게는 이제 말라 부스러진 유충 껍질 같은 그 말 한마디가, 깜깜하고 가시 돋친 그날의 네 복수를 키운 것인가. 그렇다 해도, 그 정도 연유로 날 옥죄고 한순간 지옥에 빠뜨린 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런데 저 식물 역시 이런 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구나. 불온한 식물을 보내온 네 저의는 무엇인가. 나는 아직 모르겠다. 매사 물을 잘 주고 다독이는 마음으로 살다보면, 전처럼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너와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지내게 될까. 더는 옥죄거나 지옥에 빠지는 일 없이.

 - 이근일 <파리지옥> 

[메모] 그러니까 어쩌면 시는 내게 '파리지옥'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읽기는 언제든 "무심코" 시작되는 법, 어느날 나는 시를 '무심코' 읽었고 나는 서서히 시의 언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파리지옥에 걸려든 곤충들이 잎 안에서 소화되기까지 10일이 걸린다는데 시가 쳐놓은 덫 안에 나는 아직까지 붙들려 있다. 시를 읽을 때 내장기관이 일으키는 물리적 변화를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건 내 몸을 집어삼킨 '파리지옥'의 존재감인데 내가 움직일수록 파리지옥은 나를 옥죄고 심연에 날 뻐트린다는 사실이다. 누가 내게 시를 보낸 걸까. 이 "불온한 식물"을 내게 보낸 네 저의를 나는 모르겠다. 오늘 내게 '파리지옥'은 '이근일'이다.  

   
by 파란 | 2020/01/14 16:24 | 파란의 포에지(poesie:詩)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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